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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위의 정원: 옥상 텃밭이 숨 쉬는 도시를 만든다

by nyaaon 2025. 5. 12.

도시의 옥상 텃밭을 가꾸는 모습(Ai생성이미지)
도시의 옥상 텃밭을 가꾸는 모습(Ai생성이미지)

도시 위의 정원: 옥상 텃밭이 숨 쉬는 도시를 만든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서울 시내 한복판.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에어컨 실외기에서는 쉼 없이 열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문득, 건물 위로 눈길을 돌렸을 때 푸릇한 나무와 채소들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기엔 아직 사람이 숨 쉴 공간이 남아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도시 열섬 현상’. 아스팔트와 유리, 시멘트로 덮인 땅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새도록 품고 있다가 도시 전체를 끓여버립니다. 하지만 이 뜨거운 도시 위에서 작고 푸른 반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로 옥상 텃밭입니다.

옥상 텃밭, 그냥 취미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옥상 텃밭을 ‘도시농업의 연장선’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옥상 텃밭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먹거리 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온도를 낮추고 공기를 정화하며 사람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생태적 숨구멍입니다.

흙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자라고, 생명이 있는 곳엔 바람이 불고, 바람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쉬어갑니다. 이 단순한 순환이 도시의 기후를 바꿉니다.

식물은 도시를 어떻게 식히는가?

식물은 마치 도시의 에어컨 같습니다. 뿌리를 통해 흡수한 물을 잎을 통해 증발시키며, 그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합니다. 이를 증산작용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식물이 심어진 옥상은 그렇지 않은 옥상보다 3~5℃ 가량 낮은 온도를 유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며, 미세먼지를 붙잡아 대기 질을 개선합니다. 서울연구원의 실험에 따르면, 50㎡ 규모의 옥상 텃밭은 하루 약 1g의 미세먼지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지만, 분명한 효과입니다.

강동구의 옥상 텃밭, 에너지 절감을 보여주다

서울 강동구에서는 관내 공공기관과 학교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옥상 텃밭 하나가 여름철 냉방 에너지를 최대 20%까지 줄여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단지 식물을 심었을 뿐인데, 건물 내부 온도가 내려가고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이처럼 옥상 텃밭은 단지 보기 좋고 건강한 공간이 아닙니다. 도시 에너지 순환의 실제적인 해답입니다.

세계는 옥상 위로 올라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농업이 있는 도시’를 선언하며 2026년까지 도시 전체 옥상과 벽면의 100헥타르를 녹색 농업 공간으로 채운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토론토는 모든 신축 건물에 일정 비율 이상 ‘녹색 지붕’을 의무화했고, 도심 평균 기온이 눈에 띄게 하락했습니다.

이제 세계의 도시들은 옥상을 ‘죽은 공간’이 아니라 ‘기후 회복의 공간’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아직 우리는 그 시작선에서 망설이고 있을 뿐입니다.

옥상 텃밭, 그 위에 삶이 있다

옥상에 텃밭이 생기면, 식물만 자라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은 토마토를 따고, 어른들은 흙냄새에 웃음을 짓고, 옆집과 나누는 상추 한 봉지에 정이 싹틉니다. 바쁘고 숨 가쁜 도시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숨 쉬는 공간이 되는 것이죠.

기후 위기를 넘어서려면, 기술보다도 사람의 삶을 바꾸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집 옥상 위, 단 1평의 녹색이면 충분합니다.

결론: 기후 대응의 시작은 도시 위 한 평에서

기후변화는 거대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해답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올라가지 않는 그 옥상이,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옥상 텃밭은 작은 공간이지만, 도시가 살아 숨 쉬는 커다란 숨구멍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바꿔야 할 건 도시의 구조가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거대한 문제 앞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도시의 기후를 바꾸는 일도, 결국은 아주 작고 구체적인 선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옥상 위 텃밭 한 평은 단지 흙과 씨앗만을 담고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숨 쉴 틈을 만들고, 사람과 자연이 다시 이어지는 지점입니다. 도시가 더 이상 숨막히지 않도록, 그 위를 푸르게 덮어가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지만 확실한 실천입니다.